존엄한 죽음을 위해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이 선행되야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이사장 이경희)는 최근 의사조력자살의 허용을 골자로 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발의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밝혔다.
해당 법안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다. 안규백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를 신설하고 조력존엄사를 희망하는 말기환자가 신청해 심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쉽게 말하자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의사에게 요청해 사망에 이르는 약물을 처방 받아 스스로 약물을 통해 목숨을 끊는 조력존엄사를 도입함으로써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스스로 삶을 종결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21일 입장문을 내고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전 국회와 정부가 약속했던 존엄한 돌봄의 근간이 되는 호스피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 비암성 질환의 말기 돌봄에 관한 관심, 돌봄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제도 정비 등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며, "지난 2년 간 코로나19 재난 상황을 거쳐오며 말기 환자 돌봄 현장은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비판했다.
학회는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그 시작이었다. 그러나 법제정 이후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호스피스 돌봄의 이용이 가능한 질환은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호흡부전, 만성간경화에 국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학회에 따르면 이조차 인프라의 부족으로 대상이 되는 환자 중 21.3%만이 호스피스 돌봄을 받고 있다. 또한, 제도적으로 보완되지 못한 진료환경에서 연명의료중단등결정에 관한 절차는 연명의료 미시행의 법적 근거를 남기는 문서 작성 이상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법 시행 전 국회와 정부가 약속하였던 존엄한 돌봄의 근간이 되는 호스피스 인프라에 대한 투자, 비암성질환의 말기 돌봄에 관한 관심, 돌봄을 뒷받침하는 사회적 제도의 정비 등은 제자리걸음 그 이상이 아닌 현실이다고 강조했다.
또한, 지난 2년 동안의 코로나19 재난 상황을 거쳐오며 말기 환자 돌봄의 현장은 더욱 악화되었다. 말기암 환자를 돌보는 입원형 호스피스 기관 88곳 가운데 21곳이 코로나 전담병원으로 지정되어 휴업했다. 나머지 기관도 방역을 이유로 가족들의 면회가 금지되어 환자들은 쓸쓸하게 생을 마감고 주장했다.
학회는 "이러한 시점에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한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는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법안의 요지는 의사조력을 통한 자살이라는 용어를 조력존엄사라는 용어로 순화시켰을 뿐 치료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을 합법화한다는 것이다"며 "연명의료결정법 제정 이후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지원과 인프라 확충의 책임이 있는 정부의 정책적 노력을 지원하고 감시하는 데 무관심했던 국회가 다시 한번 의지없는 약속을 전제로 자살을 조장하는 법안이라는 목소리가 높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는 매년 30만 명의 국민이 사망하고 있다. 대부분의 환자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채 고통 속에서 임종하고 있다. 고통은 환자를 넘어 가족에까지 이른다. 간병 살인, 환자와 가족의 동반자살, 아버지의 간병비를 위해 학업을 포기하는 청년 등 안타까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
학회는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질높은 생애말기 돌봄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국회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 이전에 존엄한 돌봄의 유지에 필수적인 호스피스 시설과 인력의 확충, 치매 등 다양한 만성질환 말기환자의 호스피스완화의료 이용 기회 확대, 임종실 설치 의무화, 촘촘한 사회복지제도의 뒷받침에 대한 실질적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존엄한 생애말기 돌봄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관심과 지원을 늘려야 한다"며, "한국 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는 당면한 문제의 해결에 소극적인 채 시도되는 '조력 존엄사'에 대한 논의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국회와 정부의 조속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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